책 읽는 속도가 더딘 나는 책을 3/4 가량 읽고 여행길에 올랐고 다녀와서야 완독할 수 있었다. 그래도 책의 절반 이상을 읽은 덕분에 화가 엘그레코와 벨라스케스, 건축가 가우디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가이드의 설명이 더욱 귀에 잘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
스페인의 역사는 선사시대를 거쳐, 로마의 지배, 무어인(이슬람 세력)의 지배, 스페인 통일(레콩키스타), 대서양의 시대(콜럼버스), 나폴레옹의 침공, 프랑코 독재정권, 현재로 요약된다.
이야기는 이사벨 여왕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된다. 무어인(이슬람 세력)이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고 있던 마지막 시기다.
책에서는 흘려 읽었지만, 가이드가 강조했던 이 당시의 4개 왕국이 있다.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이다. 왼쪽부터 위치한 순서대로, 레온은 포르투칼과 붙어있는 지역, 카스티야 지역은 현재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 주변, 카스티야와 아라곤 사이에 프랑스와 인접해 있는 북쪽 작은 왕국이 나바라(현재 바스크), 아라곤은 바로셀로나 중심의 카탈루냐 지역이다.
그리고 4개 왕국을 통일한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이 무어인(이슬람 세력)의 지중해 연안을 차지한 곳이 안달루시아다. 스페인이 안달루시아를 점령한 것을 레콩키스타(재정복)라고 한다.
나는 여러 주제의 이야기 중에 '인생'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사벨 여왕이 이복 오빠의 비위를 맞춰가며, 끝까지 살아남아 스페인을 차지하게 된 스토리가 인상 깊다. 그리고 작가의 콜럼버스 사상 재평가도 인상적이었는데, 여행 가이드가 상식선에서 설명했던 콜럼버스의 인격과 대비되어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책에서는 콜럼버스를 장사꾼보다는 몽상가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세비야 성당에 있는 콜럼버스의 관을 보니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돈키호테와 산초다. 스페인의 역사를 토대로 인물들과 예술을 소개하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돈키호테(진보, 감성)형과 산초(보수, 이성)형으로 나눈다.
2장은 안달루시아까지 차지한 스페인 전성기의 시작이다. 톨레도를 중심으로 대제국을 물려받은 펠리페 2세와 스페인의 미술 계보의 시작을 알리는 엘 그레코가 주인공이다. 여행 가이드는 스페인 3대 화가 계보를 외우라고 했는데, 바로 엘그레코 - 벨라스케스 - 고야 였다.
책에 의하면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지만, 피렌체 학파(레오나르도,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는 결이 다른 독특한 그림체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피렌체 학파를 우습게 여기는 발언을 했다가, 쫒겨난 그는 돈 많이 주는 스페인으로 거처를 옮겼는 데, 거기서도 이슈메이커였다. (당시 스페인은 신대륙으로 벌어들인 돈을 예술에 투자했는데, 이탈리아에서 예술가들을 데려와 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엘 그레코의 작품들은 곡선이 많고, 화려한 색을 사용한다. 또한 하나의 그림에 여러 세계가 표현된다. 엘 그레코는 고객이 원하는 그림보다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고는 그림 값을 더 줘야 한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는데, 대부분 엘 그레코의 뜻대로 그림 값을 더 받았다. (엘 그레코는 결국 궁정화가는 되지 못한다.)
3장은 벨라스케스와 고야가 소개된다. 가이드가 3대 계보라고 설명했지만, 뒤의 두 인물의 그림체는 엘 그레코와 많이 다르다. 당시, 바로크 시대의 섬세한 명암과 원근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전에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당시 아래 작품 속 '마르가리타' 공주를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는 터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그의 대표작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공주의 아름다움과 시녀의 모습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각 인물들의 시선이 특징이다. 이번에 프라도 미술관에서 실제 작품을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감상한 바로는 그림을 보는 사람 뒤에 작품 속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작품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고야의 작품들은 고야의 삶과 연결해서 보니, 집중이 잘 되었다. 고야는 힘겹게 궁정 화가가 되었다. 또한, 어느 공작 부인을 좋아했으나 버림받았고, 나이 들어서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스페인 종교 재판소의 힘은 막강했고, 그 힘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외세의 침입(나폴레옹)이었다.
스페인이 종교와 주변국들의 갈등에 휩싸이고 있을 때, 카탈루냐 지역은 상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현재 카탈루냐는 스페인 중에서 매우 잘 사는 지역이다. 카탈루냐는 17년에 독립을 시도하다가 중앙 정부의 공권력에 무릎을 꿇는다.
가우디와 구엘의 브로맨스도 하나의 이야기 거리다. 그리고 가우디의 허무한 죽음도 인상깊다. 여행지에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야를 보며 입을 벌렸지만,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고 만든 사람이 죽으면 더이상 만들어 낼 수 없다. 건축물을 포함한 예술품은 반영구적인 형태로 오랫동안 남아있지만, 작품의 갯수는 결국 유한하다는 점에서 유한성도 함께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가장 값진 것은 과거의 예술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예술품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생태계가 아닐까? 그렇지만, 이것을 다시 바꿔 생각한다면 다양한 예술품은 여러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예술 문화 생태계를 이루는 주요한 자산의 역할을 한다. 다시 정리하면,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의 영감으로 사용된다면, 그 작품은 유한성을 뛰어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주 관광지는 성당이었다. 성당 투어라고 할 정도로 각 도시의 성당들을 관람하였고 여정의 마지막 성당은 사그라다 파밀리야였다. 솔직히 사그라다 파밀리야는 가우디의 이름값 혜택을 보고 있는 듯 하다. 100년 넘게 짓고 있는 성당이라는 점이 이슈의 중심에 있는 것 같고, 성당 내부는 세비야나 톨레도 성당이 훨씬 화려하다.
공사중일때는 내면보다는 외관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안쪽 보다는 외관이 더 볼거리가 많다.
5장의 주요 인물은 달리와 갈라다. '뮤즈'라는 단어는 뜻풀이를 떠나 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단어였는데, 이제는 달리와 갈라의 삶을 통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예술가를 물적 또는 심적으로 지원하는 개념을 넘어, 삶의 목적을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에 두는 것이다. 결국, 뮤즈도 작품이 나오는 데 어느정도 기여를 하는데, 가장 큰 기여는 그 작품이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가치를 끌어올리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과정에서의 헌신도 주요하지만, 결과론적인 부분이 더 큰 것 같다.
달리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본 받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쫓았고 결국에는 당당하게 쟁취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자신감은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트인문학'이라는 책은 나중에 읽을 내 도서 리스트 중에 있던 책이기도 한데, 이번에 여행과 관련하여 '스페인' 버전을 읽었지만, 어쨌든 한정된 공간에서 읽었기에 더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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