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모임에서 망원동 독립서점 투어를 나섰다. 선물 받은 새 책이 집에 좀 있어서, 책을 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망원로 이후북스라는 곳에서 책을 사게 되었다.



책 표지와 제목을 보면, 작가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 같았다. 책 표지를 조금 자세 들여다 보면, 글쓴이는 환자이면서 간호사였다. 그리고 난치병을 앓고 있는 간호사라는 글귀가 보인다. 무슨 난치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책 표지는 내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크론병. 인생을 살면서 크론병을 앓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내 앞에서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메뉴를 확인해야 했다. 이 불치병을 그 두 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싶은 목적이 분명해 졌다. 





47p를 읽으면, 드디어 표지의 호기심이 풀린다. 




직장에서 내가 서비스를 주고 내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된다. 꼭 직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느 쪽에도 제대로 속해있지 않은 나만의 특별한 영역을 갖고 있는 느낌이다. 한 편으로는 양쪽 다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나는 꼭 절대 '선'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이 있다. 작가도 그랬다. 환의를 입은 채로 간호사를 흉내내고 있었다.




몸이 괜찮아지면, 열심히 일해보고 싶다는 그녀의 외침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최근 있었던 의사들의 파업이 오버랩되면서, 더욱더 텍스트가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24년 2월. 나도 4년 반을 다녔던 곳을 퇴사했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 나는 무직이다. 이직이라면 모르겠지만, 견디지 못해 하게되는 퇴사는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나에게 우울감이 찾아온다. 작가처럼 몸까지 아픈 상태라면, 그 우울감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우울한 감정으로 도서관에서 눈물을 참으며 독서를 하고 있을 때, 잠시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인간의 생리적인 배설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길래. 배설을 잘못하면, 사회에서 영영 퇴출될 것 같은 이 불안감은 뭐길래. 배설하라고 만들어진 인간인데 말이지.




먹는 게 문제면, 먹지 않으면 되지만, 싸는 게 문제면 먹는 것 까지 골치 아프다.




내가 말하지 않아 놓고,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실의에 빠진 모습. 나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때 이야기 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이 다행이었던 것인지. 이야기 했더라면, 나는 조금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었는지. 다행히도 나는 솔직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솔직함 뒤에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터라, 요즘에는 이 솔직함을 어떻게 컨트롤 해야할지 고민된다.




함께 먹지 못해 오히려 내가 미안했을 뿐... 이 말이 정말이라면, 작가는 참 착한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마음. 책을 통해 배운다. 내가 내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 내 뒤에 나의 전철을 밟을 미래의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

어릴적 나는 내가 소화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규칙적인 시간에 배설을 하고, 딱히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소화했다. 그런데, 훈련소에 가니 규칙적인 배설이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배설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잠을 포기하고 조교의 눈을 피해 새벽 일찍 일어나 나의 배설에 집중했던 기억이 있다. 공익 판정을 받은 게 나에게는 정말 큰 일이었다.

처음으로 사회생활 1년을 넘겼던 직장이었다. 프로젝트성 업무의 긴장감과 매번 바뀌는 업무환경 그리고 조직의 단결을 위해 마셔야 하는 술 등이 힘들어, 내 발로 콜센터 부서로 들어갔다. 그때 그냥 그만 뒀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다녀보겠다고 부서 이동을 한 것이, 평생의 직업병을 얻게 되는 첫 단추일 줄이야.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콜센터 특성상, 무엇보다 내가 모르는 전화가 걸려올지 모른다는 무서움 때문에 내게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생겼다. 구내 식당에서 어쩌다가 콜라가 나오면, 후배에게 두 개 먹으라고 넌지시 건내곤 했는데, 그걸 몇 번 본 어느 직원이 나에게 '지난번도 그러시더니, 속이 계속 안 좋으세요?' 라고 물었다. 나름 티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 꼭 한 두명 있다. 집에 와서, 콜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는 내가 참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퇴사일을 정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는 항상 같은 대답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셔야 합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소화력이 약한 친구들이 하나 둘 늘었다. 우유 거품이 들어간 음료. 라떼를 못 마시는 녀석들이 하나 둘 씩 늘고, 과일 쥬스도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살펴야 하는 녀석들이 늘었다. 갑자기 길을 가다가, 자신은 화장실 좀 들릴테니 여기서 빠빠이 하자는 지인들도 늘었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내가 이해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참 불편하다.

주말에는 장이 안정감을 찾는 것처럼, 확실히 퇴사를 하고 긴장할 일이 줄어들자, 배설 횟수가 줄어들고 화장실에서 힘을 쏟을 일이 줄어들었다. 작가도 지금쯤이면, 크론씨를 더 많이 알게 되었으려나? 이번, 독서는 거울을 통해 내 몸을 보는 것 같았다.